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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k는 식문화를 통해 견고한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 가도록 돕습니다. krk Magazine을 통해 본인만의 태도와 취향을 쌓아가는 이들의 경험을 ‘식’이라는 주제 아래 이야기합니다.


ABOUT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에 쌓이는 경험들이 삶의 방식을 결정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음식만을 조명하기 보다는 분명한 멋과 취향을 가진 플레이어들의 식문화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krk가 제안하는 식문화가 여러분의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박기민, 스튜디오 라보토리 디렉터People

“요리는 주도권이 나에게 있는
단기 프로젝트에요.”




pm 12:30 보이차와 비트샐러리 주스


인간은 오감을 가졌다. "그런데 '몸각'이라는 게 있어요." 철학자 김용옥이 정의한 이 개념은 다섯가지 감각 외의 '온 몸으로 느끼는 감각'으로 박기민은 그 실체를 한옥을 거닐면서 감지하게 될 때가 있더라고 알려주었다. 이는 곧 음식을 대하는 우리의 감각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잘 우려진 보이차가 담긴 찻잔의 질감은 촉각을, 인터뷰 내내 흐르던 배경음악은 청각을 깨웠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달궈진 팬 위에 파스타 재료들을 더하는 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온갖 감각들을 가장 빠르게 동원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일상적 미식을 실천하는 사람들 시리즈 두 번째 편은 공간 디자인 스튜디오 라보토리 Labotory의 박기민 디렉터다. 점심이 가까워지는 시간, 라보토리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오늘의 주인공인 보이차와 비트샐러리 주스를 기민 님의 언어로 소개 해주세요.

반년 전부터 저와 매일 하루의 시작을 함께 하고 있고 제가 최근 가장 많이 마음을 기울이고 있는 대상인, 2017년에 생산분 대입종 보이 생차입니다. 그 옆에 있는 건 가장 간소화 된 레시피로 출근 직전에 준비하는 비트샐러리 주스에요. 비트 절반, 샐러리 스틱 두 개, 비피더스 두 통을 넣고 믹서기로 갈아서 만들어 먹는데요. 비트와 샐러리는 영양학적 조합 보다는, 그간 냉장고를 관찰한 결과 그나마 신선도가 오래 보존되는 채소들이어서 선택했어요. 비트는 조금만 넣어도 강렬한 색감을 내지만, 이 쥬스는 실제로 비트의 맛은 강하지 않고 아삭아삭하게 씹히는 샐러리의 식감이 핵심이랍니다.





차에 마음을 기울인다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어떤 계기로 차에 입문하게 되셨는지부터 들려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5년 전 즈음 국내의 차 브랜드 공간을 작업하게 됐어요. 프로젝트를 원활하게 진행하려면 차에 대해 많이 알아야 했는데, 일로 시작한 공부였지만 다양한 차종 중에서 발효과정을 거친 보이차가 제 몸에 가장 잘 맞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렇다고 그 때부터 일상에 차를 들인 건 아니었고요. 실은 반 년전 즈음 코로나 확진자와 밀접접촉을 하게 되어 격리생활을 하게 됐는데, 그 때 강제적인 여유를 가지게 된 게 확실한 계기가 됐어요. 할 일이 없어서 별 생각 없이 집에 있는 차를 천천히 우려 마셔보았는데 그게 너무 좋았던 거죠. 그 때부터 매일 아침마다 1시간 내외로 차를 마셔요.





강제적인 단절의 시간이 생각지 못하게 일상의 즐거움을 더해준 것이네요.

과거에는 아침잠을 조금이라도 더 자기 위해 출근준비에 최소한의 시간을 들였는데, 이제는 차를 마시는 즐거움을 위해 아침잠을 포기해요. 무엇보다, 저는 머리에 든 생각을 비우는 식으로 차 마시는 시간을 활용하지는 않아요. 대신,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갈지 하나하나 시뮬레이션 해봅니다. 겉으로 보면 명상에 가까운 모습이지만, 해야할 일, 만나야 할 사람들을 영상처럼 그려봐요. 미리 하루를 살고, 실제로 하루를 한 번 더 사는 것 같은 기분이에요. 덕분에 좀 더 온전한 하루를 보내게 되죠.





온전한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할 기민 님의 일과 작업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가볼게요. '윤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쌓아왔던 시각적 정보와 생각들이 음악을 통해 증폭된다"고 하셨는데요. 인풋만큼이나 증폭 시키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이 과정에서 음악으로부터 어떻게 도움을 받으시나요.

저는 음악이 없으면 작업을 전혀 못 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새로운 음악을 찾아서 듣지는 않고, 특정 아티스트를 중심으로 한 미니멀리즘 음악을 수백번씩 듣습니다. 미니멀리즘 음악의 선구자인 필립 글라스 Philip glass부터 닐 프라함 Nils frahm, 올라프 아르날즈 Olafur arnalds의 음반을 들어요. 이 음악들의 주요한 특징은 리듬과 하모니가 동일한 패턴으로 계속 반복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규칙적인 구조를 가진 소리를 들으면서 작업할 때에 안정감이 느껴지는 건 물론이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상대에게 전하거나 바깥으로 표현할 수 있는 상태가 돼요. 열심히 시각적 정보를 쌓다보면 '언젠가의 내가 이런 것도 보고 저런 것도 봤지' 싶지만, 봤다고 해서 언제나 꺼내서 쓸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음악을 들어서 새로운 영감이 떠오른다기보다는 내가 이미 가지고 있던 걸 정제하는 것이네요. 그렇다면, 요리를 좋아하시게 된 데에도 시각, 청각을 포함한 감각적 요소들의 영향이 있었을까요.

처음에는 시각으로 시작 되지만, 만드는 과정에서 청각, 후각이 순차적으로 느껴지죠. 식감을 느끼는 건 미각인 동시에 촉각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요리에 매료된 건 직업인으로서의 제가 하고 있는 일에서 느끼는 결핍을 채워주기 때문이에요. 공간/인테리어 디자인은 짧게는 한 달, 길게는 해를 넘길만큼 호흡이 긴 프로젝트들이에요. 제가 아무리 주체적으로 일을 대해도 늘 도중에 변수가 발생하고요. 게다가 늘 수많은 사람들과 의견을 조율해요. 어떤 공간도 디자이너 혼자서 완성할 수는 없거든요. 이런 데에서 느끼는 아쉬움은 요리를 하면서 해소 됩니다. 대부분의 요리는 하루 안에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주도적으로 계획하고 완성할 수 있으니까요.





어떤 사람들은 장보기부터 뒷정리까지를 놓고 볼 때 요리를 길고 번거로운 과정으로 바라보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기민 님에게 있어 요리라는 건 주도권이 있는 단기 프로젝트 처럼 보입니다.

맞아요. 요리는 내 머릿 속에서 떠올린 요소들을 전부 담아낸 결과물을 몇시간 내로 보게 되는 프로젝트죠. 그리고, 요리는 상상력을 기반으로 레이어를 하나씩 쌓는 거라고 생각해요. 달궈진 팬으로 파스타를 만드는 걸 예로 들어볼게요. 올리브 오일을 뿌리고 난 후, 마늘, 고추, 버섯, 새우, 브로콜리, 아스파라거스를 넣은 다음, 면, 면수, 소금, 후추를 넣고, 가니쉬를 올리잖아요. 어떤 재료를 추가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매 번 파스타를 만들 때마다 전혀 다른 레이어가 쌓이는 거예요.





이렇게 하루 한 끼를 통해 기민 님의 식생활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늘 하루를 기준으로 아침, 점심, 저녁을 어떻게 드실 예정인지 알려주세요.

언제나처럼 7시 즈음 차를 마시면서 하루를 열었고요. 오늘은 인터뷰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시뮬레이션 해보았어요. 그리고 아삭한 샐러드 스틱 두 개를 베어 물면서 출근을 했습니다. 주로 이용하는 온라인 마트에서 손질 된 샐러리 스틱 20개입을 주문하고는 합니다. 점심으로는 샐러드를 먹고요. 아침, 점심을 가볍게 먹는대신 저녁에는 먹고 싶은 메뉴를 적극적으로 찾아서 먹어요. 무엇을 원할지는 저녁이 되기 전까지는 미정이랍니다.





마지막 질문을 끝으로 인터뷰를 마칩니다. 기민 님에게 ‘미식'이란 무엇인가요.

뜬금없지만, 제가 어렸을 때 천자문을 마스터했거든요. 한문은 뜻과 음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런데 말이 가진 속뜻을 잘 모르는채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이를테면, '의미'도 한자어인데요. 뜻 '의'에 맛 '미'를 더해요. 그러니까, 말 그대로 뜻을 맛보라는 말입니다. 제가 나름대로 미식을 정의하려면, '미식'이라는 단어의 의미도 알아야겠더라고요. 찾아보니 아름다울 '미'로 시작되더라고요. 저는 이 음식이 어떤 의도로 만들어졌는지, 내 눈 앞에 어떤 방식으로 내어지는지, 이 음식을 먹은 나는 어떤 기억을 아카이빙 할 수 있을지를 알려고 하는 것이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Editor. 서해인
Photographer. 장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