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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k는 식문화를 통해 견고한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 가도록 돕습니다. krk Magazine을 통해 본인만의 태도와 취향을 쌓아가는 이들의 경험을 ‘식’이라는 주제 아래 이야기합니다.


ABOUT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에 쌓이는 경험들이 삶의 방식을 결정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음식만을 조명하기 보다는 분명한 멋과 취향을 가진 플레이어들의 식문화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krk가 제안하는 식문화가 여러분의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박주희, 변호사People

“더 좋아하기 위해 더 시간을 들이기”





pm 12:00 호지차와 화과자


정신 없고 신경이 곤두 선 평일과는 달리 조금은 차분해진다는 주말 오후, 개인 작업실에서 만난 박주희는 적극적으로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를 위한 1시간, 여유를 위한 17시간, 떼어놓고 기념하고 싶은 반년의 시간까지.

일상적 미식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는 시리즈 첫 편은 문화예술 콘텐츠 분야를 전문으로 다루는 박주희 변호사다. 큰 틀에서는 변호사의 일을 하지만, 분야의 특수성 덕분에 문화예술 콘텐츠에 늘 관심을 두고 있다. 업계인이 아닌 생활인 박주희가 문화예술을 대하는 기조는, "어디까지나 즐기는 사람정신 마음에 달렸다"는 점이다. 먹는 일도 마찬가지다. 그는 혼자 오랜 시간을 들여서 배우고, 만들고, 즐거워 한다.






오늘의 주인공은 주말의 점심을 위한 화과자 입니다. 준비해주신 주희 님의 언어로 소개 해주세요.

화과자는 일본에서 차와 곁들여 먹는 음식인 '와가시(わがし)'로, 오늘은 카페인이 적은 편인 호지차와 함께 내어드려요. 먼저, 복숭아, 매실, 수선화 모양을 가진 '우이 로우' 입니다. 쌀가루와 전분을 넣고 쪄냈기 때문에 마치 떡과 비슷한 식감을 가졌습니다. 모두 흰 강낭콩으로 만든 흰 빛깔의 앙이 들어 있는데요. 한 입 베어 먹어 보시면 살며시 산미가 느껴지실텐데, 그건 제가 앙을 만들 때에 매실청을 조금 넣었기 때문이에요. 그 옆에 놓인 것들은 익숙한 비주얼을 가진 '양갱'과 '모나카'입니다.





붉은 빛이 도는 겉면의 정교한 그라데이션을 보니 한 두 번 만들어보신 게 아닌 것 같아요. 한 번 만드실 때에 다양한 종류로 만드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화과자 제조과정에서의 진짜 재미는 모양을 빚는 데에 있어요. 더불어, 화과자는 계절의 특징을 나타내는 음식이기도 한데요. 봄철에 앙을 만들 때에는 벚꽃 화과자를, 지금은 긴 겨울을 나고 있으니 수선화 화과자를 만들어보는 식입니다. 앙을 만들 때에는 설탕을 덜 넣는 것이 주요한 지점인데요. 본래 다량의 설탕을 넣는 건 화과자를 더 오래 보관하기 위함인데, 저는 기본적으로 두고두고 먹을 용도로 화과자를 만들지는 않아요.





이런 저런 화과자의 모양을 빚기 직전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짐작 되는데요.

앙을 만들기 위해 같은 공정을 여러 번 거치는데 그게 꼬박 17시간이에요. 그 외의 시간이 많이 드는 것은 아니고요. 화과자는 손에서 조물조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금방 말라버리거든요. 그래서 아주 짧은 시간 내에 만드는 기술도 필요하고요. 물론, 시판용 '강낭콩 앙'을 구매하면 전체 공정이 2시간 내외로 줄어들 거예요. 하지만, 제게 의미있는 건 '앙을 만드는 17시간의 시간'이에요.





종종 SNS에서 "요즘은 왜 화과자 인증샷이 뜸한가요"라는 질문을 받으신다고요. 주희 님의 일상에 화과자를 만들만큼의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든 다정한 안부인사로 짐작이 됩니다.

실제로 작년에 무척 바쁜 한 해를 보내고서 거의 1년만에 화과자를 만들어본 것 같아요. 제가 이번에 SNS에 중간중간 앙 제작 현황을 공유했거든요. 그랬더니 랜선친구 분들께서 메세지를 엄청나게 보내주셨어요.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응원한다", "완성샷을 꼭 보고 싶다"라고 하시는거죠. 다음 날 완성샷을 올렸더니 고생했다고 해주시기도 하고요. 격려해주시는 분들께 감사했고 덕분에 만드는 저도 즐거웠죠. 그분들께 화과자를 하나씩 드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어요. 하지만 저의 체력과 시간은 한정적이니까요.





몸과 마음에 기초적인 여력이 있어야 만들 수 있지만, 무한정 만들 만큼의 몸과 마음은 준비될 수 없는 역설이네요. 주희 님께서 지난 한 해를 "시간은 빈틈이고 일정은 액체와 같아서 빈틈을 매워두지 않으면 금방 일정이 들어차버린다"고 회고하신 점이 인상적인데요. 와중에 건강한 식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일까요.

때때로 끼니를 거르거나 급하게 먹게 되는 걸 떠올려보면 그건 제 마음이 조급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저보다 덜 조급한 사람이라고해서 앉아서 3시간동안 밥을 먹는 건 아닐거잖아요. 그런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저는 더욱 단호해지려고해요. '지금부터 1시간은 내가 나를 위해서 밥을 먹는 시간이야'라고 선을 긋는거죠. 저는 주말에도 일을 하면서 보내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주말 아침은 단호하게 차를 마시는데에만 시간을 활용하려고 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눈 뜨자마자 파자마 바람으로 바로 노트북 켜서 앉는단 말이죠. 그대로 밤새 일을 하게 되는 날도 있어요.





이번에는 주희 님의 지난 해 회고만큼이나 인상적이었던 '.5세 기념일' (이하 쩜오세 기념일)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쩜오세 기념일은 무엇이고, 언제부터 어떻게 그 날을 기념하게 되셨는지 알려주세요.

처음으로 쩜오세 기념일을 떠올린 건 제가 서른여덟일 때였어요. 제 생일이 5월 23일인데, 정확히 반년 뒤인 11월 23일에도 축하 파티를 가져야겠다고 남편과 장난스레 주고 받은 말에서 시작 됐고요. 솔직히 저는 '나이 들어가는 내 자신이 좋아!' 라고는 말할 수 없는 부류의 사람이에요. 더 나이 들었을 때의 제가 어떤 모습일지는 알 수 없지만, 40대를 앞두고 있는 지금의 저는 30대로서의 제 모습이 가장 좋아요. 40대라는 나이에 대한 저의 고정관념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중년이 된다니? 하고 어쩐지 서운해질 때가 있는 것 같거든요. 다만, 40대가 되어서도 쩜오세 기념일은 계속 치를 거예요. 그때그때를 기념하는 마음이 지난 번보다는 더 각별하리라 생각해요.





이렇게 하루 한 끼를 통해 주희 님의 식생활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늘 하루를 기준으로 아침, 점심, 저녁을 어떻게 드실 예정인지 알려주세요.

주말인 오늘 아침에는 간단하게 스크램블 에그를 먹었고, 이렇게 화과자와 호지차로 이른 점심을 나누었네요. 저녁으로는 봄동으로 만든 전과 샐러드를 만들어 먹으려고 해요. 며칠 전에 장을 보았는데 어느덧 봄동이 나왔더라고요. 가정식의 핵심은 신선한 제철 음식이 아닌가 싶어요.





마지막 질문을 끝으로 인터뷰를 마칩니다. 주희 님에게 '미식'이란 무엇인가요.

저는 음식을 두고 가르치려들거나, 맛에 관하여 대세 또는 편향된 흐름을 만들어내려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아요. '맛있다', '맛없다'라는 개인의 입맛만큼이나 주관적인 게 없으니까요. 미식이라는 건 철저하게 각자의 취향에 속하는 것 같아요.







Editor. 서해인
Photographer. 장수인